무림(武林)에서는 고수가 고수를 한눈에 알아본다. 고수가 고수를 알아보는 것은 내공의 깊이가 깊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느 분야든 고수는 고수를 쉽게 알아본다. 나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으면 경의를 표한다. 하수일수록 고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얕은 솜씨 믿고 날뛰다가 큰 코를 다친다. 무림에서처럼 고수들만 모인다면 어떻게 될까. 수채화에 온 힘을 바치면서 수채화에 일생을 거는 고수들이 모인 단체라면 그 그림의 내공이 얼마쯤일지 짐작이 간다. 전북수채화협회는 그런 수채화 고수들이 모인 단체다. 안팎에서 널리 그림 실력을 인정받고 높은 단계에 올라 있는 이들이 방학을 맞은 지금 정기회원전을 갖고 있다. 내공의 깊이가 남다른 그들을 찾아본다.
한국화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먼저 그림을 보는 법을 배우듯 수채화를 그리는 사람은 유화기법에 익숙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화라는 것이 사군자와 새 그리고 꽃을 그려 단순한데 무슨 그림 보는 기법이 필요하냐고 질문할지 모르지만 인간의 관찰력과 작가의 상상력이 혼재되어 있기에 맛깔스런 그림을 그리려면 그림 속에 나타난 비어있음을 먼저 익혀야 한다. 쓱쓱 그려 채워 넣는 것 같지만 여백이 없으면 그림의 형상이 답답하고 작가의 사유가 내재되지 않은 것 같기에 얼마만큼 여백이 크나에 따라 품평이 달라진다.
여백은, 즉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사유의 공간은 유한 속에 무한을 보여준다. 여백은 형상을 최대한 절제할 수 있는 작가의 욕기(慾氣)다. 하나라도 더 그려 넣어야 직성이 풀리는 작가의 욕망을 덜어내는 일이 작품을 작품답게 만든다. 그래서 형상이 빽빽한 그림은 상상을 허용하지 않는다. 작가에게 다가서려는 길을 끊어 놓은 것 같다.
서양화에서도 수채화는 한국화를 닮았다. 한국화처럼 묵향이 스며들지 않았지만 채워있으면서도 비어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채화는 유화기법처럼 종이 위를 물감으로 가득 채우지만 사유의 공간이 늘 존재한다. 이 공간이 없다면 차라리 사진이나 세밀화가 훨씬 나을 것이다. 눈 쌓인 계속이나 깨끗한 물이 흐르는 여름 하천을 담은 수채화에 사유의 공간이 없다면 그냥 밋밋하고 답답한 그림으로 다가 선다.
덧 칠이 허용되지 않는 수채화는 비 개인 날 아침처럼 맑다. 이는 티를 가진 마음으로는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가 얼마만큼 정결한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여백의 색깔도 달라진다. 이런 이유로 수채화를 그린다는 것은 어찌보면 수행하는 일과 같다. 그만큼 기본기가 갖춰져 있지 않으면 결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작가는 겸허하고 거시적인 통찰로 사물을 바라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맑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기에 수채화 작가들도 어느 땐 더는 일에 몰두한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일정한 수준에 오른 작가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그 모임의 양태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에 수채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20년전 도내에서 결성되었던 ‘수채신작파’그룹이 전국 규모로 확대되면서 주 활동무대가 서울로 옮겨간 이 후 도내 수채화계의 통합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물빛수채화’! ‘군산수채화회’ ‘비현회’ 등이 의기를 모아 전북수채화협회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당시 참여회원은 30명이었고 초대 회장은 이형구씨가 맡았다. 이들이 추! 구하는 것은 수채화의 아름다움을 계속 종이 위에 담아내는 일이다. 각 모임에서도 솜씨 좋기로 이름이 난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으니 작품의 수준은 남다를 수 밖에.
이들은 2005년 5월 학생회관에서 첫 전시회를 갖고 42명의 회원작품을 선 보였다. 작품 전시비용은 회원들의 주머니를 털어 마련했다. 그리고 지난 8일 두번째 전시회 개막식을 가졌다. 30명의 회원들이 참여했다. 첫 전시회 때보다 출품작은 줄었으나 작품의 열정은 더 뜨겁다고 평가를 받았다. 8월 중에 작품전을 갖게 된 이유는 수채화인구 확대와 방학을 맞은 청소년에게 수채화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번 전시회로 원래의 뜻이 조금은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회원들은 수시로 만나 의견을 나누고 필요한 정보를 습득한다. 회원간 교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라고 한다. 작품에 열중하고 있기 때문에 시간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김세견 회장은 “수채화는 물과 물감 그리고 종이가 만나 순간적인 표현에 따라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서는 오묘함이 들어 있다”며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내 놓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 때문에 이번 출품 작품작을 보면 수채화에 대한 색다른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김회장은 이어 “전시장을 찾아 이번 작품을 감상하면 작가가 물이라는 매개체를 이용해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미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서 “수채화를 이해하고 예술성을 느끼기에 좋은 기회이기에 학생들이 많이 찾아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최인수 사무국장은 “수채화는 물빛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에 무척 까다로운 작업 절차를 거친다”면서 “작품전을 지속적으로 마련해서 수채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도록 하고 타 시도와 교류전을 갖고 타시도 수채화 흐름등을 살펴 볼 기회도 가져볼 생각이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이번 작품전에 출품한 회원은 고현자 김분임 김세견 김정희 남석란 류인하 문환희 박경희 박선미 백인선 소 훈 소채남 신우종 오현숙 유대영 유신규 유정화 윤정미 이선옥 이정란 이희권 이희완 전영경 정?! 느? 정현숙 조 숙 최명덕 최인수 최찬희 한인순씨다. 최범서기자
